눈치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회적 지능"에 해당됩니다.
지능이 뛰어나다, 즉,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건,
그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스마트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요.
지능에는 영역-특수성(특정 영역에서만 뛰어남)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한 경제학 박사라 한들, 주식 투자 실력은 그저 그럴 수도 있으며,
공부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필요한 사회적 지능이나
스포츠 경기에서의 전술 실행 능력은 매우 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구기 스포츠에서 걸출한 플레이메이커들이
경기장 안에 있는 선수들 간의 역동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신체적 움직임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과 이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ex. 농구로 따지자면 BQ)
이건, 단순히 훈련과 피지컬로만은 극복하기 힘든 선천적인 능력에 가까워요.
그리고, 사회적 지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맥락(social context)을 제대로 읽어내고,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지 예측할 수 있는 것
애당초 눈치를 보는 행위란,
사회적 지능이 어느정도 탑재된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일종의 사회적 스킬인 것이죠.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즉, 지나침은 모자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말이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길래 내가 말 대신 수레를 끌고자 한다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행동은 없을 것이다.
그저 적당히 말을 쉬게 해 주면 되는 문제 아닌가?
이처럼, 배려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배려를 너무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눈치가 뛰어난 사람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정보 활용 능력의 방향성>에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슨말인고하니,
내가 어떤 상황에서 주요 인물들 간의 사회적 역동을 이해하게 됐을 때,
여기서 캐치한 정보를 나를 위해 쓰느냐? 남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서,
눈치가 뛰어난 사람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갈리게 된다는 겁니다.
가령, 내향적 눈치를 지닌 사람들은
social cue들을 해석할 때 그 방향성이 나를 향하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하면 "내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반면, 외향적 눈치를 지닌 사람들은
social cue들을 해석할 때 그 방향성이 타인을 향하게 되요.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회사 생활을 예로 들자면,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건,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즉, 저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내가 눈치 챈 것과
내가 알았으니 저 사람을 도와야겠다라고 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별개의 문제라고 해서 서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인간에게는 인지적 조화로움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는데,
'나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지금 저 사람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저 사람을 돕지 않겠다.'
라는 명제들은 당사자의 머리속에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게 되요.
인지부조화는 굉장한 내적 불편감을 발생시키므로,
결국 우리의 뇌는 부조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서 변화시키려 합니다. 어떻게?
'하지만 난 저 사람을 돕지 않겠다.'
→
'그러니 저 사람을 도와 주자.'
차라리 몰랐으면 말지,
알게 됐으니 내 마음이 불편해서라도 도와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물론, 성격적으로 이타적인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인지부조화가 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도와야한다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남들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능이 뛰어나다고 한들, 눈치를 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눈치를 본다는 말은 본질적으로,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지부조화란 굉장히 강력한 힘이다.
내 생각들간에 불일치가 생겨나게 되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지게 되고,
이러한 불편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동기가 급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인지부조화의 해소가 꼭 합리적, 효율적 결과를 낳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빨리 불편한 감정을 정리하고자 취했던 행동들이 지나고나면
나에게 더 안좋은 결과를 안겨다주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
즉,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고자 하는 선택들은 무엇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묻는
이성적 의사결정이라기보다는 무엇이 가장 기분이 괜찮은가를 묻는 감정적 의사결정에 더 가까운 것이다.
한편,
우리가 흔히 눈치가 비상하다, 눈치가 뛰어나다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를테면,
순식간에 사회적 맥락과 사람들의 감정선을 파악하고 난 후,
나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다줄 것이라고 예상되는 행동을 취사선택하는 거예요.
도움 행위도 이들에게는,
단순히 이타심의 발로, 또는, 인지부조화의 해소가 그 동기라기보다는,
이 행동을 했을 때 종합적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왔을 때 취하게 되는
전략적인 행동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긍정적 결과라 함은, 이득 - 비용이 0을 초과하는 상황을 의미함)
'아니 짧은 순간에 그런 걸 계산하고 행동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타고난 능력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통 초예민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적 수 읽기"에 능한데,
그렇게 캐치한 social cue를 어떤 방향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눈치가 뛰어난 사람과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죠.
통상적으로,
사회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타인의 불편감에 반응을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고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명제와 "하지만 난 돕지 않고 싶어"라는 명제가 상충하므로,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명제인 전자를 따라서 후자의 명제가 도와 주자는 쪽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압박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즉, 인정 욕구에 얽매이지 않고 미움 받을 용기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좋은 사람일 수는 없어, 에너지가 부족할 땐 언제나 내가 우선이 돼야 해.'
와 같은 기본 명제가
'그러니 오늘은 돕지 않겠어.'
라는 명제를 거스르지 않을 수 있게 돼요.
즉, 별다른 불편감 없이도,
오늘은 타인에게 맞춰주지 않겠다라고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social cue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느냐, 아니면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느냐 여부는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이 인정 욕구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로부터 판가름나게 됩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고자 싶은 마음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은 미션이겠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관점의 전환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 위해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타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말이에요.
에너지는 한정돼 있는데,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되면,
정작 우리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온전히 좋은 사람인 걸까요?
가령, 우리 집 재산 빼서 남의 집 도와주는 가장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진정 좋은 가장일까요?
인정 욕구, 좋은 사람 컴플렉스를 내려놓는 가장 쉬운 방법은
어쩌면, 그 대상을 남들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나 아니야?
나에게 친절하고 잘 대해줬으니까 나야말로 좋은 사람인 거지.'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친절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나에게 친절한 사람 역시 좋은 사람입니다.
때론 남의 눈치 말고, 우리들 자신의 눈치도 살펴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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