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뒤면 명절입니다.
올해 추석은 이른 감이 없지 않아서
명절이라는 느낌도 별로 없네요.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의 어린 시절의 명절은 친척들 만나는 기쁨도 있었지만
용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더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래 들어 명절은 휴식과 여행으로 많이 대체가 되는 분위기고
사이가 별로인 형제자매들 내지는 친척들과 만나면 분란이나 생기니
만나지 말고 각자들 편하게 보내자는 주의로 많이 가는 거 같습니다.

기계공업고등학교 야간을 다녔던 저는
3년 동안 배웠던 기계와는 달리 (사실, 그냥 놀았음)
시작한 일은 제과점이었습니다.
계기로는,
30 ~ 40년 전에는 지금처럼 제과 프랜차이즈가 없이
대부분 개인제과점이었는데
아버지의 수양딸 남편이 (저에게는 매형) 제과점을 해서
중랑구 면목동에 집도 사고 가계도 하고 있어,
그 모습이 좋아 보였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시작된 진로였습니다.
어떻게 시작을 할까 고민하다 알아보니
지금도 존재하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한국제과학교에서
일주일에 2번씩 삼개월인가를? 수료했고
거기서 만난 형님의 추천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제과점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 하필 제과점이었고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약 1년 이상은 일을 했었던 거 같네요.
그곳에서 일하던 어느 봄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제노와즈라는 빵을 만드는 빵틀에 기름을 바르고 있었던 시간에
일하던 제과점으로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서
"엄마가 위독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너라."
지금도 제노와즈라는 빵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만,
그 빵을 만드는 곳들은 잘 없더라고요.
그때 논산인가? 전주인가?
농업고등학교에서 식품을 배웠던 고등학생 두 명이
실습을 나와서 일을 하다 실습기간이 끝나고
제과점에 정식 취업을 했다고 합니다.
같은해에 졸업인데,
한 친구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한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는데
그때에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늦게 다녔던 친구들이 더러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던 시절이었고
그렇다고 동기인데 존댓말을 할 수가 없으니
반말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 동기들은 학교에서 3년내내
식당쪽의 일을 경험해 보았을테니 일을 정말 잘 했습니다.
특히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동기는
손발이 빨라서 일을 척척해나갔기에
빵이라면 학원에서 몇 달 배웠던 저와는
하늘과 땅의 실력이었습니다.
저는 일이 서툴러 오븐에서 빵도 태워먹고
반죽도 말아먹기를 몇 번,
열 명이 넘는 주방에서 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공정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몇 시간 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 살 많았던 동기의 타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두 살 많았던 동기는,
지금도 이름이 생각이 나는 김○○이라는 사람인데
어딘가 좀 모자란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성실하고 착하고 제 것 잘 못 챙기는 성격이었습니다.
돈을 죽어라 안 쓰는 스타일이었는데
자기가 원체 가난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추석 명절이 돌아오자 집으로 가져갈 선물을 바리바리 사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버스비를 절약하려고
약 3km의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집에서 용돈을 받아서 썼던 저는 그 모습에 약간은 충격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논현동에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보면
그 동기가 생각이 납니다.
당시 월급이 30 ~ 40만 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먹여주고 재워주는 직장이라도
돈 한 푼 안 쓰고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 400만 원을 모으기 힘든 시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동기는
부모님과 동생(?)에게 월급을 모두 보낸다고 했었던 거 같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조금 더 일을 하다가
한 살 많은 동기의 비아냥 때문에
젊었던 혈기를 참지 못하고
월급이고 뭐고 주방을 모두 뒤집어엎고 나왔으며
칼을 들고 그 새끼 죽여버린다고 설쳤었는데
역시나 약삭빠른 그 동기 놈은 줄행랑.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제과점 일은 저에게 안 맞았던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라고 시키신,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장성을 하니
저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된다는 걸,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과점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에
저보다 열 살 가까이 많은 두 분과는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고
한 사람은 동네 개인 제과점을 운영,
한 사람은 대형 개인 제과점에서 월급 받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그때 그 사람 중에
지금 생각해도 좀 어눌한 거 같지만
선한 눈빛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고지식하지만 상대방을 걱정해 주던 말투의
그 동기 형님은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를
이 글로 마음을 전합니다.
추억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모른다.
- 릴케 -
#그때그사람 #추억이야기 #지난날의기억 #제과점이야기 #사회초년생 #명절추억 #아버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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