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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여행

26년 9월 세 번째 주 - 그때 그 사람

by 지입차정보센터 010 3392 4001 2026. 9. 19.

며칠 뒤면 명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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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은 이른 감이 없지 않아서

​

명절이라는 느낌도 별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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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

저의 어린 시절의 명절은 친척들 만나는 기쁨도 있었지만

​

용돈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 더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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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명절은 휴식과 여행으로 많이 대체가 되는 분위기고

​

사이가 별로인 형제자매들 내지는 친척들과 만나면 분란이나 생기니

​

만나지 말고 각자들 편하게 보내자는 주의로 많이 가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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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업고등학교 야간을 다녔던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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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배웠던 기계와는 달리 (사실, 그냥 놀았음)

​

시작한 일은 제과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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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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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40년 전에는 지금처럼 제과 프랜차이즈가 없이

​

대부분 개인제과점이었는데

​

아버지의 수양딸 남편이 (저에게는 매형) 제과점을 해서

​

중랑구 면목동에 집도 사고 가계도 하고 있어,

​

그 모습이 좋아 보였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

시작된 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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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작을 할까 고민하다 알아보니

​

지금도 존재하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한국제과학교에서

​

일주일에 2번씩 삼개월인가를? 수료했고

​

거기서 만난 형님의 추천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제과점에

​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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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 하필 제과점이었고

​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약 1년 이상은 일을 했었던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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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일하던 어느 봄날,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

제노와즈라는 빵을 만드는 빵틀에 기름을 바르고 있었던 시간에

​

일하던 제과점으로 아버지가 전화를 하셔서

​

"엄마가 위독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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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제노와즈라는 빵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만,

​

그 빵을 만드는 곳들은 잘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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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논산인가? 전주인가?

​

농업고등학교에서 식품을 배웠던 고등학생 두 명이

​

실습을 나와서 일을 하다 실습기간이 끝나고

​

제과점에 정식 취업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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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해에 졸업인데,

​

한 친구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고

​

한 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았는데

​

그때에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늦게 다녔던 친구들이 더러 있어서

​

그런가 보다 했던 시절이었고

​

그렇다고 동기인데 존댓말을 할 수가 없으니

​

반말을 하고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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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기들은 학교에서 3년내내

​

식당쪽의 일을 경험해 보았을테니 일을 정말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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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동기는

​

손발이 빨라서 일을 척척해나갔기에

​

빵이라면 학원에서 몇 달 배웠던 저와는

​

하늘과 땅의 실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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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이 서툴러 오븐에서 빵도 태워먹고

​

반죽도 말아먹기를 몇 번,

​

열 명이 넘는 주방에서 한 사람이 실수를 하면

​

공정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

몇 시간 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안하기도 했지만

​

한 살 많았던 동기의 타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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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살 많았던 동기는,

​

지금도 이름이 생각이 나는 김○○이라는 사람인데

​

어딘가 좀 모자란 거 같으면서도

​

굉장히 성실하고 착하고 제 것 잘 못 챙기는 성격이었습니다.

​

돈을 죽어라 안 쓰는 스타일이었는데

​

자기가 원체 가난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

추석 명절이 돌아오자 집으로 가져갈 선물을 바리바리 사서

​

강남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버스비를 절약하려고

​

약 3km의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

집에서 용돈을 받아서 썼던 저는 그 모습에 약간은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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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논현동에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길을 보면

​

그 동기가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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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월급이 30 ~ 40만 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

먹여주고 재워주는 직장이라도

​

돈 한 푼 안 쓰고 저축한다고 해도 1년에 400만 원을 모으기 힘든 시절,

​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동기는

​

부모님과 동생(?)에게 월급을 모두 보낸다고 했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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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지나고 조금 더 일을 하다가

​

한 살 많은 동기의 비아냥 때문에

​

젊었던 혈기를 참지 못하고

​

월급이고 뭐고 주방을 모두 뒤집어엎고 나왔으며

​

칼을 들고 그 새끼 죽여버린다고 설쳤었는데

​

역시나 약삭빠른 그 동기 놈은 줄행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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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

제과점 일은 저에게 안 맞았던 일이었습니다.

​

이 일을 하라고 시키신,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장성을 하니

​

저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된다는 걸,

​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야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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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점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에

​

저보다 열 살 가까이 많은 두 분과는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고

​

한 사람은 동네 개인 제과점을 운영,

​

한 사람은 대형 개인 제과점에서 월급 받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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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

그때 그 사람 중에

​

지금 생각해도 좀 어눌한 거 같지만

​

선한 눈빛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

고지식하지만 상대방을 걱정해 주던 말투의

​

그 동기 형님은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

건강하게 잘 살고 있기를

​

이 글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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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살리기 위해서

​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면

​

안되는 것인지 모른다.

​

- 릴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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